16.11.10

아침 9시쯤 일어나서 10시 반 버스를 타고 11시 기차를 타고 12시쯤 그 곳에 도착하려 했던 나의 계획은 '늦잠' 때문에 파산났고,
급히 준비해서 갔다고 갔어도 시티에 도착하니 1시 반이었다. 미용실에는 2시쯤 간다고 얘기를 해두었으므로 역에서 내리자 마자 바로 가야했다.
그 곳은 오히려 평일이여서 사람이 참 많았다. 내가 사는 지역의 나름 분주한 금요일 밤은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지니까. 한국에서의 생활의 한 편을 본 것 같았다.
한국은, 12시까지도 깨어있는 곳이 많은 것에 비해, 이곳은 금요일빼고는 대부분이 오후 5시면 문을 닫는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면, 동네 길거리는 정말로 황폐하다.
드문드문 뒤늦게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이나, 조깅하는 사람들 말고는 어두워져 나오지 않으니까. 혼자 걷다 누가 잡아가도 모를만큼 비어있다. 아무도 없다.
머리를 자르고, 주립 도서관 앞의 가든에 앉아서 멍청히 하늘과 나무는 물론이고 바삐 지나가는 직장인, 트램에서 타고 내리는 사람들, 다정한 연인들, 사진 찍는 여행객들, 책을 가방에 짊어지고 가는 대학생들을 졸듯이 구경했다. 그러다, 아까 기차안에서 울음을 터트렸던 독일에서 온 것 같은 배낭 여행객이 생각이 났다.
그녀는 친구와 함께 엄청나게 큰, 산악 배낭을 매고 있었다. 속으로 나는 '이 근처에 저렇게 입고 하이킹을 할 만한 산이 있었나?'를 속으로 궁금해 하다 금새 다시 다른 생각에 빠져들었다. 종종 들리는 그녀와 그녀의 친구의 대화 속 언어는 영어가 아니었다. 우리학교로 독일 아이들이 교환학생으로 많이 오는데, 그때 그 친구들끼리 얘기하는 걸 들었을때의 억양과 비슷했다. 처음에 그녀가 탔을때, 나는 예의상 인사차 미소를 씨익 지어보았다. 보통, 어설프더라도, 어색하더라도, 일부러라도 미소를 지어 회답해주는데, 그녀는 어쩐지 그러지 않았다. 그러던 그녀가 갑자기 눈 밑을 손으로 닦듯이 쓸었을 때에는, 잘 못 본줄 알았다.
스쳐보다, 다시 제대로 눈을 그녀의 얼굴에 박았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나보다 더 당황한 그 친구는 그녀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덮으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독일어를 하나도 이해할 수는 없어도, 그건 알 수 있었다. 둘은 계속 무언가를 얘기했다. 그녀는 울음을 참으려고 애를 썼지만, 눈믈은 계속 조용히 쏟아져 나왔고,
갈라진 목소리지만 조용하고 담담하게 친구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해주는 걸 나는 그 전과는 다르게, 귀를 쫑긋하고, 엿들었다. 분명, 무슨 말인지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쩐지 나까지도 서글퍼 졌다. 친구의 말 중 skype 라는 말만 알아 들을 수 있었는데, 왠지 skype로 그녀를 울게 만든 사람과 대화를 시도해보라는 제안인 것 같았다. 울음 소리 한 번 없이 눈물만 쏟아내는 그녀가 다 안쓰러웠다. 신경 쓰이지 않는척, 창문을 보고 있는 척 하고 있던 나는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다. 속으로 내 가방에 손수건이나 휴지가 있나 생각해보았지만, 있을리가 있나. 처음으로, 그런걸 가지고 있지 않은 내가 조금 원망스러웠다. 위로해주고 싶었다, 굉장히.

그러다 자리에서 일어서, 주립 도서관을 한장 찍었다. 건물 양식이나 그런거 잘 모르지만, 주립 도서관의 형태, 옛것의 맛이 나서 좋다.

어떤 한국인 언니도 만났다. 주립도서관 사진을 찍고 그렇게 또 잡생각에 빠져있을 때, 그 언니가 와서는 '한국분이시죠?'라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사실 그 언니는 전화를 하며 이 쪽으로 오다, 나를 한 번 뚜러지게 확인하듯이 보고 갔었다. 그 때 나도 물론 그 언니가 한국인이라는 걸 눈치챘다. 머리모양, 옷, 그 유행하던 안경이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러던 언니가 내 앞쪽에 멈춰섰다. 누굴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 곳에는 사람이 아주 많았으니까.
그러다 그 언니가 그렇게 말을 걸어 왔을 땐, 솔직히 반가웠다. 어쩌면 나는 혼자 그곳에 앉아서 외로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는 짧게 미주알고주알 존댓말로 말을 주고 받았다. 존댓말로 주고 받는 한국말이 예뻤다. 그 언니는 디킨대에서 미디아를 전공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구체적으로 어떤 공부를 하냐고 묻자,
신문 기사 같은거 쓰고, 취재하고 그런다고 했다.에세이에도 토할듯한 나는, 신문 기사를 어떻게 쓰냐고 했다. 언니는 이제는 포기했다는 듯이 만 이천자 정도 써야된다고, 그냥 집에 쳐 박혀서 쓰면된다고, 했다.
언니는 내일 있을 여기에 얼마온지 안된 한인친구들을 위한 소모임에 오라고 했다. 교회에서 주최하는 거지만, 교회에 오라고 하는게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모여서 먹고 놀고 친해지자는 취지로 만든거라, 교회 다니기 싫어하는 친구들도 그 곳에는 많이 온다고 했다. 시간은 저녁 6시부터 7시까지.
한시간 동안 그렇게 만남을 가진다고 했다. '그래 그런것도 좋지, 사람들 만나고 친해지고 좋네' 라고 생각했지만, 곧 바로 마음을 닫았다. 아직 나에게는 그런 심적 여유도 욕심도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거짓말을 했다. 알바가 있다고, 그리고 멀리 살아서 올 수 있을지 없을지 잘 모르겠다고. 그 언니의 눈에 실망한 기력이 여려 나는 그래도 노력해 보겠다고, 말을 이었다. 호의를 그렇게 딱 잘라내기엔 잔인하니까. 핸드폰 번호도 주고 받았다. 연락은 하지 안할지 알 수 없지만, 오늘 그 언니에게 이상하게 조금 고맙다. 나 외로웠구나. 결국.


이상한 중년같이 생긴 대학생 남자어른에 대해서는 쓰지 않겠다. 느글한 얼굴로 노골적인 말, 그것부터가 아니였어. 하지만 가쪼의 말을 듣고 어쩐지 내가 내 마음속 그 아이에게 그런 존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랬을거야.

많은 사건이 있었던, 오늘 하루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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